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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라스 쉬프의 슈만 새 앨범 속에는 판타지 3악장의 최초 버전이 녹음되어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슈만은 마지막 코다부분의 몇 마디를 자신의 손으로 지워버린 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좀더 심플하고 확실한 ‘마무리’ 를 지어놓았다.

Schiff 가 굳이 ‘작곡가가 스스로 지워버린’ 곳을 복원해서 연주, 녹음한다고 한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반응은 다소간 시큰둥이었다.  물론 궁금증이 생기는 건 사실이지만, 음악을 지나치게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는 풍조가 그닥 마뜩찮은 탓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미 작곡가 스스로가 지워버렸다는데 그걸 굳이 살릴 필요가 있겠나.. 싶기도 했고,  ’슈베르트꺼는 매우 강경한 어조로 그냥 냅두라 하더니 슈만은 왜 갑자기 오지랖?’ 싶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연주를 듣고보니 그의 ‘오지랖’ 을 100% 이해하고도 남는다. 듣는 순간,  완전히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으니 말이다.

그간 이 곡을 들으면서 늘 ‘느닷없이 끝나는 건 여전하군’ 이라고 툴툴대곤 했었던 탓이었을까?
슈만이 지워버렸다던 그부분은 너무도 완벽하게 ‘빠진 부분’ 을 채워넣는 것만 같았다. 느닷없던 느낌도, 갑자기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것 같은 코드 몇 개의 어색함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 쪽이 훨씬 더 설득력있고, 훨씬 더 직접적이었고, 훨씬 더 가깝고, 훨씬 더 …. 솔직했다.   그리고 처음 들은 이후로 도저히 머리에서 분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도 아름다운 ‘마무리’ 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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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이 왜 그토록 베토벤의 멜로디(멀리있는 연인에게)에 집착했는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 그가 인용한 베토벤의 노래가 뭔가 이상한 부분에 들어가 있다고 느끼는 편이라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현악 사중주, 교향곡2번, 그리고 판타지… 지극히 개인적 감상이지만 뭔가 그의 ‘인용’ 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머리를 갸웃하게 만들곤 했었다.
판타지의 마지막 악장에 대해 의아해 한 건,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간 그의 ‘인용’ 이 뭔가 엉뚱한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건 너무도 ‘적재적소’ 라고 느꼈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걸 스스로 지워버린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감정적 효과는 둘째치고 기승전결이 딱 들어맞는 구조인데, 그는 왜 거길 지워버렸을까?

정적 뒤로 숨이 멎을만큼 그리움을 토해내듯 울리는 코드들, 그리고 숨바꼭질 하듯 두문불출하던 그 ‘베토벤의 멜로디’ 가 너무도 또렷하게 귀에 잡히는 순간, 구조적으로 완벽한 마무리이자 감정적으로도 완벽한 ‘판타지’ 를 만드는 그 마지막 순간을, 슈만은 제 스스로 지워버렸다. 눈물이 쏟아질 듯한 그 순간을 그는 굳이 남겨놓고 싶지 않았던걸까. 아니면 영영 그리움 자체가 그리움인 채로, ‘잡고싶지 않은 채’ 남겨지길 원했기 때문이었을까? 왜 그는 판타지의 마무리를 그렇게 황급히, 두어개의 기본코드로 마감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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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손에 넣고서도, 그는 작품 속에 베토벤의 ‘그’노래를 또 다시 불러온 인간이었다.

그가 스스로 뒷부분을 지우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의 판타지는 교향곡 2번의 마지막과 정확히 맞닿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최초 버젼의 판타지를 듣는 순간, 2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이 떠오르면서 감정적으로 울컥 한 건, 그의 음악에 내가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중독된 탓인지도…. 어쨌거나 몇몇 풀리지 않았던 그의 ‘아픈 날의 교향곡’ 에 대해서 이제는 제법 또렷하게 그의 목소리를 잡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I have often written to you with invisible ink, and there is a secret writing between these lines which will come to light later on…

그가 지워버린 그 멜로들을 들으며, 요하힘에게 보낸 그의 편지 구절이 떠오른 건 우연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이제사 드러나보이는 그의 ‘숨겨진 메시지’가 아닐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 그가 스스로 라인강에 몸을 던진, 차가운 2월. 눈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그렸을 지 모를 그의 그리움. 잡을 수 없는 그 그리움이 전하는 메시지가 며칠 째 귓가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Nimm sie hin denn, diese Lieder, Die ich dir, Geliebte, sang, (Take them, then, these songs that I sang to you, beloved)
사랑하는 이여, 그대를 위한 이 노래를 받아 주기를…., 어쩌면 그는 죽을 때까지 이 말을 계속 되뇌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인강에 결혼반지를,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던져넣고서야 그것들을 더더욱 간절히 그리워했었던 것처럼.



슈만, 판타지 마지막 악장, 마지막 부분, 최초 스케치/ 정적 뒤로 베토벤의 ‘멀리있는 연인에게’ 모티브가 울린다. /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판타지 마지막 코다는 이 부분(1분 경부터 나오는 멜로디)이 슈만 스스로의 손에 의해 삭제된 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곡의 마무리는 조용하고 심플한 기본 코드로 맺는다.


슈만, 교향곡 2번, 마지막 악장의 코다.  그는 마지막 악장에 두 번의 ‘멈춤’ 을 넣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 멈춤과 정적 뒤로 베토벤의 ‘멀리있는 연인에게’ 와 1악장에 쓰였던 모티브가 함께 얽히면서 곡을 마무리한다…. 그동안 몰랐던 ‘판타지’ 의 마무리와 교향곡 2번의 코다는 완전 똑같은 형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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